권력은 본질적으로 위험하고 잔혹하다. 한번 달콤한 맛을 보면 좀처럼 헤어나오기 힘든 짙은 중독성을 지닌다. 절대 권력 앞에서는 그 어떤 견제 장치도 힘을 잃기 십상이며, 자칫하면 독재라는 괴물로 변모한다. 이는 봉건주의 왕조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권력을 둔 혈투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일 테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우씨왕후’는 이러한 권력의 야수성을 잔혹한 살육의 묘사를 통해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어릴 적부터 장수를 꿈꿨던 우희(전종서)는 태자 아니면 혼인하지 않겠다는 언니 우순(정유미)을 대신해 북방을 호령하는 둘째 왕자 고남무(지창욱)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치열한 전쟁 끝에 남무가 왕위에 오르며 우희 역시 왕후가 되지만,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폐위 압박에 시달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상 을파소(김무열)의 조언에 따라 그녀를 멀리하던 왕마저 독살당하며 우희는 가문 전체가 몰살당할 벼랑 끝에 선다. 하지만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가문을 위한 체스말이 되기보단, 스스로 형사취수혼을 택하며 셋째 왕자 고발기(이수혁)를 찾아 나선다. 무예와 지략을 두루 갖춘 우희는 “여자의 몸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아버지 우소(전배수)의 낡은 관념에 당당히 맞선다. 백성을 도륙하는 발기의 만행을 목격한 뒤엔 과감히 발길을 돌려 직접 전장을 설계하고 지휘하는 등, 기존 사극에서 보기 힘든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여성 리더의 면모를 뽐낸다.
진취적 서사를 갉아먹는 퇴행적 앵글 아쉬운 점은 극명한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드라마가 내세운 이 눈부신 주체성은 카메라의 퇴행적 시선 앞에서 차갑게 식어버린다. 극 중 여성 캐릭터들을 다루는 방식은 마치 1980년대 심야 에로 영화의 낡은 문법을 답습하는 듯하다. 은밀함을 넘어 노골적으로 여성의 나체를 훑는 관음증적 앵글이 수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넷째 왕자 고연우(강영석)가 형수인 왕후의 알몸을 상상하며 수음하는 장면은 과거 신군부의 폭거를 호도하기 위해 쓰였던 자극적 영상물들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시대착오적이다.
극 안에는 권력을 향한 치열한 암투, 우순의 배신, 주나국의 왕손임을 숨긴 채 복수를 꿈꾸는 을파소의 권모술수 등 흥미로운 쟁탈전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굳이 필요치 않은 퇴폐적 연출이 몰입도를 깬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이상적인 여성 지도자의 서사와 그녀들을 단순히 성적 대상화하는 작위적인 앵글의 불협화음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새로운 서사를 품기엔 연출의 그릇이 너무나도 낡은 셈이다.
창작의 장벽을 허문 AI, 쏟아지는 혁신 이러한 콘텐츠 내적 불균형은 흥미롭게도 현재 한국 미디어 산업 전반이 직면한 구조적 모순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 제작 방식은 최첨단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정작 권력을 쥔 유통망의 구조는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현실 말이다.
최근 한국 콘텐츠 제작 현장은 인공지능(AI)의 도입으로 격변기를 맞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자료를 보면, 2025년 초 기준 국내 콘텐츠 산업의 생성형 AI 도입률은 약 20%에 달했다. 방송 및 영상 제작 분야에서의 활용도가 가장 높았다. 과거엔 막대한 자본과 대규모 인력, 특수 장비가 필수적이었던 작업들이 이제는 소수 정예 인력과 AI 툴만으로 거뜬히 해결된다. 전 MBC 드라마 PD이자 현 스튜디오 클레이 대표인 최은경 감독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그녀가 제작한 AI 단편 영화 ‘아틀란티스의 꿈’은 기존 방식으론 감당하기 힘든 시각적 환경을 AI로 구현해 내며 제작비를 기적적으로 절감했다. 진입 장벽은 무너졌고, 누구나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작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변하지 않는 독점 권력, 좁아지는 유통의 문 문제는 관객과 만나는 길목이다. 창작의 저변은 폭발적으로 넓어졌지만, 배급망은 여전히 소수의 플랫폼이 철저히 독점하고 있다. 거대 OTT 플랫폼과 기존 방송사, 대형 극장 체인이 어떤 작품을 세상에 내보낼지 결정하는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제작이 민주화되는 속도를 유통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 상황마저 빙하기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에 따르면 2025년 한국 극장가 총매출은 전년 대비 12.4%, 관객 수는 13.8%나 곤두박질쳤다. 특히 한국 영화의 타격이 심각해 매출은 39.4%, 관객은 39.0% 폭락했다. 파이가 줄어들다 보니 배급망을 타기 위한 생존 경쟁은 지옥에 가깝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조사처럼 대중의 시청 습관이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스트리밍 서비스로 굳어지면서 플랫폼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작품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콘텐츠의 생산력은 혁신 기술을 날개 삼아 비상하고 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창구는 기득권의 통제 아래 꽉 막혀 있다. 앞을 향해 질주하는 진취적인 서사를 낡은 카메라 앵글이 발목 잡는 것처럼 말이다. 폭발하는 창작의 에너지를 억누르는 이 구조적 병목 현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현시점 한국 콘텐츠 산업의 가장 뼈아픈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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