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은 둥글고, 그라운드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때론 데이터나 논리로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다.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무대를 평정하고 화려하게 귀환한 늦깎이 투수가 있는가 하면,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던 MVP 출신 베테랑 타자가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며 메커니즘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2026시즌, 메이저리그가 빚어내는 이 기막힌 아이러니를 들여다보자.
아시아를 제패하고 돌아온 사나이, 코디 폰세
최근 토론토 블루제이스 팬들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은 단연 코디 폰세다. MLB 소속 각 구단 담당 기자들이 꼽은 ‘2026시즌 주목할 선수’ 명단에서 폰세는 단연 눈에 띄는 스토리를 가졌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주전 경쟁에 밀려난, 이렇다 할 특징 없는 불펜 투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의 시간이 그를 완전히 다른 투수로 개조했다.
일본 무대(2022~2024년)를 거쳐 2025년 KBO리그 한화 이글스에 둥지를 튼 폰세는 그야말로 한국 마운드를 폭격했다. 180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무려 252개의 탈삼진을 솎아냈고, 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구속 상승과 더불어 꽁꽁 숨겨져 있던 잠재력이 마침내 만개한 것이다. 토론토가 서른한 살의 이 대기만성형 투수에게 3년 3,000만 달러(약 443억 원)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베팅한 이유다.
2015년 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전체 55순위)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됐던 그가 2020년 8월 빅리그에 데뷔했을 때만 해도 이렇게 험난한 여정이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피츠버그 시절 1승 7패, 평균자책점 5.86으로 고전했던 그는 2020년 8월 28일 세인트루이스전 이후 메이저리그에서 단 1승도 추가하지 못했다. 마지막 등판조차 2021년 10월 4일 신시내티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5시즌 만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빅리그 마운드에 오르는 폰세는 내년 시즌 토론토의 4~5선발로 꾸준히 기회를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LA 다저스에 무릎을 꿇었던 토론토로서는 폰세가 선발진에 연착륙해 대권 도전에 힘을 실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다저스의 과제, 그리고 베츠의 지독한 아홉수
토론토의 아쉬운 준우승 제물이었던 LA 다저스 역시 2026시즌을 맞아 새로운 고민거리들을 안고 있다. 당장 마운드에서는 빅리그 2년 차를 맞는 사사키 로키의 활용법이 숙제다. 사사키는 지난해 정규시즌 부상으로 6~8월을 통째로 날리며 10경기 1승 1패, 평균자책점 4.46으로 고전했다. 하지만 가을야구 무대에서는 불펜으로 9경기에 나서 3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0.84라는 무시무시한 호투를 펼쳤다. 다저스로서는 사사키가 선발 투수로 복귀했을 때 가을에 보여준 그 압도적인 구위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하지만 정작 다저스 클럽하우스에서 가장 속이 타들어 가는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무키 베츠다. 베츠의 올 시즌은 ‘억울함’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된다. 지난 화요일 탬파베이 레이스전 6회말, 그는 타석에서 타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냈다. 상대 투수 드류 라스무센의 초구 커터를 정확한 타이밍에 걷어 올렸고, 타구는 무려 101.3마일(약 163km)의 속도로 뻗어 나갔다. 베이스볼 서번트 기준 기대 타율(xBA)은 0.640. 열 번 치면 여섯 번 이상은 무조건 안타가 되어야 할 타구였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공은 유격수 테일러 월스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냥 받아들여야죠. 엿 같지만 어쩌겠습니까?” 다음날 인터뷰에서 씁쓸하게 내뱉은 베츠의 한마디는 올 시즌 그가 겪고 있는 답답함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데이터와 현실의 괴리, 잃어버린 감각을 찾아서
현재 33세인 베츠는 40경기(4월 복사근 부상으로 한 달 이상 결장) 동안 타율 0.203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자신의 커리어 평균보다 무려 85리나 낮고, 커리어 로우였던 지난해의 0.258보다도 55리나 추락한 수치다.
문제는 타구의 질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다는 점이다. 타구 속도와 발사각을 기반으로 산출된 그의 기대 타율은 0.269다. 실제 타율과 무려 6푼 6리나 차이가 나는데, 이는 현재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가장 큰 격차다. 통계상으로 그는 리그에서 ‘가장 운이 없는 타자’인 셈이다. 다저스 타격 코치진도 이 극단적인 지표를 근거로 그를 다독이고 있지만, 당사자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베츠는 캘리포니아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코치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건 진심으로 고맙다”면서도 통계의 맹점을 꼬집었다.
“기대 스탯이라는 건 결국 ‘진짜’가 아니지 않습니까. 나도 강한 타구를 날리고 싶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경기에서 이기는 겁니다. 때로는 빗맞은 텍사스 안타가 더 절실할 때가 있죠.”
그는 스스로 스윙 궤적이 깎여 맞고 있으며, 공의 안쪽을 파고들어 끝까지 밀어주지 못한다고 느낀다. 그 결과 강한 타구는 많이 생산하지만, 정작 파워를 실어 공을 띄워 올리는 비율은 턱없이 부족해졌다. 결국 데뷔 13년 차를 맞은 베테랑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스윙 메커니즘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파헤치고 있다. 신체 밸런스부터 스윙 각도, 배트의 어느 부위에 공이 맞는지까지 하나하나 재조정하는 낯선 과정을 겪고 있다.
“평생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본능적으로 어떻게 안타를 치는지, 어떻게 승부해야 하는지 알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완벽한 포지션에서 배트 중심에 공을 정확히 맞히지 않으면 아예 승산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찌 보면 예견된 시련일지도 모른다. 체격이 왜소하고 배트 스피드가 평균을 밑돌았던 베츠에게, 나이라는 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게다가 올봄 그를 괴롭힌 복사근 부상, 그리고 지난해부터 전업 유격수로 전향하며 쌓인 체력적 부담(지난주 야마모토 요시노부의 퍼펙트게임 도전을 무산시킨 뼈아픈 실책은 차치하더라도)이 겹겹이 쌓여 그가 실수할 수 있는 여지를 지워버렸다.
과연 코디 폰세는 KBO리그에서 되찾은 구위로 빅리그 마운드에 자신의 가치를 다시 증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억울한 타자 무키 베츠는 이 지독한 불운과 노쇠화의 그림자를 뚫고 반등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너무도 다르게 엇갈린 두 선수의 서사가 2026시즌 그라운드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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